중증 자폐 '피터팬' 아빠의 마지막 편지

피터팬 아빠가 남긴 숙제, 우리의 몫이 되었다.

중증 자폐가 있는 아들을 20년 넘게 홀로 돌보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피터팬 아빠’ 전경철 작가가 세상을 떠나 2026년 9월 5일 별세했고, 장례는 평소 뜻에 따라 무빈소로 치러졌습니다.



지난 9월 5일 저녁, 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중증 자폐가 있는 아들을 27년간 홀로 키운 전경철 작가입니다. 그는 아들을 '피터팬'이라 불렀습니다. 몸은 건장한 청년으로 자랐지만 정신의 나이는 두세 살에 머물러 있는 아이였고, 네버랜드의 소년처럼 끝내 어른이 되지 않을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삶의 끝에서였습니다.

이혼 후 중증 자폐 아들을 20년 넘게 홀로 키웠고, 간암 말기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아들을 돌봐줄 기관을 찾아다녔습니다. 1년 넘게 전국 시설 1000여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받아준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은 브런치 글과 에세이 『안녕, 피터팬』에 담겼고, MBC 〈실화탐사대〉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피터팬"을 그리워하다가 떠나간 아빠

간암 말기와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그가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자신의 몸이 아니라 홀로 남겨질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치료보다 먼저 아들이 머물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1년 넘게 전국의 시설 1000여 곳을 두드렸지만 어디서도 선뜻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장애가 너무 무겁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가장 먼저 문전에서 돌려세워지는 이 아이러니를, 그는 자신의 몸으로 증언해야 했습니다.

그 거절의 기록은 글이 되었습니다. 그가 브런치에 쓴 글은 에세이 『안녕, 피터팬』이 되었고,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응원과 후원이 이어진 끝에 아들은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동체 마을에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책의 인세와 후원금을 모아 재단 설립을 추진했고, 아들 같은 이들이 24시간 안전하게 함께 살아가는 마을, 이른바 '네버랜드'를 꿈꿨습니다. 내 아이의 자리를 구한 아버지가 같은 처지의 다른 아이들의 자리를 만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비극만이 아니었습니다. 방송에서 그는 돌봄의 세월을 희생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힘들었지만 아들이 안겨준 행복도 분명히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같은 길을 걷는 부모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눈물 섞인 칭찬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시선이라는 사실을 그는 몸소 알려주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그가 아들에게 바란 것도 소박했습니다. 아빠를 잊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도, 완전히 잊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따뜻하게 바라봐 주던 "늙은 남자가 있었다" 정도의 희미한 그리움으로만 남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 한 줄에는 모든 부모가 품은 가장 깊은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없어도 이 아이가 안전하기를, 그리고 아주 조금만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의 별세 직후 정부는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추진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 대상이 올해 2340명에서 내년 2760명으로 늘어나고, 평일에만 운영하던 24시간 1대1 지원이 주말까지 확대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닿은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것이 '충분하다'는 답은 아직 아닙니다. 대상이 늘어도 대기는 남고, 시설이 생겨도 일할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이 1000여 곳의 문 앞에서 거절당해야 했던 구조가 정말 바뀌었는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서비스를 제공할 민간 기관이 없는 곳에서도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모들의 요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흔히 추모를 하루의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아버지를 제대로 기억하는 길은 눈물이 아니라 시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이 식은 뒤에도 예산이 집행되는지 확인하고, 현장에서 제도가 실제로 돌아가는지 묻고, 그가 시작한 재단과 공동체가 그가 없이도 이어지도록 거드는 일입니다. 부모가 아프거나 세상을 떠난 뒤에야 자녀의 거처를 찾는 일이 더는 없도록, 위기가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아들은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아이를 둔 수많은 부모가 오늘 밤에도 같은 걱정으로 잠을 설칩니다. 피터팬 아빠가 남긴 숙제는 이제 한 가족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전경철 작가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아드님이 오래도록 따뜻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는 자신이 떠난 뒤 아들을 비롯한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살아갈 ‘네버랜드 마을’과 ‘피터팬재단’에 힘을 보태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독자들의 응원 댓글과 후원 덕에 아들은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동체 마을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후 전 작가는 추진위원장을 맡아 피터팬 재단 설립을 이끌었고, 책 인세와 개인 후원금을 합쳐 총 4억 4760만 원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꿈꾼 것은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이 24시간 안전한 돌봄을 받으며 함께 사는 공동체 '네버랜드'였습니다.

  • 아드님의 존재를 존중하는 시선: 아드님은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불쌍함이나 비극으로만 그리기보다, 작가님이 바랐던 대로 '존엄한 한 사람'으로 존중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그런 의미에 노력해주신 '네버랜드'라는 희망이 고인의 뜻에도 담겨있는것 같습니다.
  • 마지막 당부를 글: 작가님은 아들에게 자신이 완전히 잊히지는 않기를, 따뜻하게 바라봐 준 늙은 남자가 있었다는 정도의 희미한 그리움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기억하는 일과 제도를 만드는 일을 이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남은 숙제 무엇일까?

그의 노력이 가진 의미

1. 개인의 비극을 사회의 의제로 바꿨습니다. 부모가 눈 감는 순간까지 자녀 걱정을 해야 하는 현실은 전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다수 중증 발달장애인 가정이 처한 공통된 처지입니다. 그는 이 문제를 구체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보여 주었습니다.

2. '희생'이라는 틀만으로 돌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긴 돌봄의 시간을 희생으로만 보지 않았고, 아들과 함께한 행복한 순간들 덕분에 이겨냈다고 고백했습니다. 힘든 현실과 사랑을 함께 말했다는 점이 많은 부모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3. 공론이 정책과 제도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피터팬 아빠가 우리 사회에 주신 깊은 울림을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을 위한 정책으로 이어나가겠다"고 밝혔고, 9월 10일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추진방안'이 발표되었습니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 대상자를 올해 2340명에서 내년 2760명으로 확대
▶현재 평일만 운영하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1 대 1 지원 서비스를 주말까지 확대

4. 같은 처지의 가족들에게 '혼자가 아니다'라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같은 '피터팬'을 키우는 한 부모는 세상에 우리 아이들의 상황을 알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남겨진 숙제

1. '확대'와 '충분'의 간격입니다. 통합돌봄 대상이 늘어도 이용 인원이 정해져 있어 별도 심사를 거쳐야 하고, 주말까지 계속 생활하는 영구적 주거시설과는 다르며, 최중증 성인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살 선택지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증원 폭(420명)과 실제 대기 수요를 비교해 보는 것도 글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2. 거부당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전 작가가 겪은 거절의 핵심은 장애가 심하다는 이유로 기존 복지시설 이용조차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민간 제공기관이 없거나 지원을 거부하는 지역에서도 국가와 지자체가 서비스 제공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3. 위기가 오기 전의 준비입니다. 같은 단체는 돌봄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개인별 주거·돌봄 전환계획을 수립하고, 당사자 의사와 특성에 맞는 다양한 주거 선택지와 24시간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전 작가는 시한부 판정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야 이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대비됩니다.

4. 돌봄 인력입니다. 정부안도 고강도 돌봄이 필요한 최중증 발달장애인 돌봄 종사자의 전문수당 인상을 지속 검토하겠다고 하는 수준입니다. 시설이 생겨도 일할 사람이 없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점은 짚어 볼 만합니다.

5. 재단과 '네버랜드'의 지속 가능성입니다. 재단 설립 추진위가 8월 25일 출범했고, 별세 이후에도 추진위원들이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한 개인의 열정에서 출발한 일이 그가 없어도 굴러가는 제도가 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6. 관심이 식은 뒤의 일입니다. 추모와 베스트셀러, 정책 발표는 시작일 뿐입니다. 내년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고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지, 사람들의 관심이 이어지는지가 진짜 숙제일 것입니다.